월간 보관물: 7월 2013

성실과 재능

책을 읽거나 다른 사람들의 블로그를 방문해 그들의 글을 읽다보면 참 잘 쓴다는 말이 절로 나오게 되는 때가 있다. 난 다시 태어나도 이런 표현은 못할거야, 이런 문장은 나는 구사하지 못할거야, 이런 이야기는 내가 만들어낼 수 있는건 아니지 등등.

그들중 나이가 유독 어린 사람이라도 있다면, 아 이 사람은 글 쓰는 데 재능을  타고났구나, 싶기도 하다. 어릴때부터 이렇게 글을 잘 쓰다니, 하면서. 준천재인가, 뭐 그런 생각도 들고. 나는 이렇게 못 쓰는데, 하면서.

그런데 알라딘의 내 블로그에는 방문객이 많다. 처음 내가 알라딘에 블로그를 개설할 때는 내 블로그에 사람들이 올 거라는 생각을 안했었는데, 그래서 즐겨찾는 수가 열명이 넘어갔을 때, 어이쿠 이걸 어쩌나, 막 벅차고 두려웠던 기억도 난다. 사십명이 되면 탈퇴하자, 사십면이 되면 블로그를 은퇴하는거야, 이런 생각을 했고, 그 당시에 가깝게 지내던 사람에게도 이런 말을 했었다. 사십명 되면 은퇴할거라고.

 

그런데 지금은 내가 은퇴하겠다고 말한 즐찾수의 열배가 넘어버리고 말았다. 언제 어느틈에 이렇게 되었는지 모르겠는데, 무엇보다 가장 놀라운 건, 사람들의 왜 내 글을 읽을까, 이고 도대체 어떻게 이렇게 많은 사람이 오게 된걸까, 이다.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글을 쓰는데는 재능이 없고 또 글을 잘 쓰기 위한 훈련을 받은것도 아닌데. 간혹 사람들이 내게 성실하다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이 아주 싫었다. 성실하다는 건, 재능이 없다는 뜻이 생생한 증거인 것 같았다. 가진게 성실뿐이니 죽어라 노력한다는 것 같았고, 내가 원하는 건 타고난 재능이었기 때문에, 성실하다는 건 내가 원하는 것과 아주아주 거리가 멀었다. 말하는 사람은 선의로 말했을지언정, 나는 성실하다는 말을 듣는게 어마어마하게 싫었다. 제발 그 말만은 내게 해주지 않기를 바랐다. 나한테 성실하다고 하지마, 제발. 그 말 듣기 싫다고. 가진게 그것 뿐이라는 것 같아 진짜 끔찍하다고. 성실하다는 말은 나한테 ‘너는 재능이 없구나’ 라고 확인사살 시키는 말 같았다.

 

 

그런데 얼마전부터는 이런 내 생각이 좀 변하기 시작했다. 돌이켜보니 사람들은 블로그를 하다 트위터로 옮겨가고 또 재미있게 하다가 그만두고는 했다. 알라딘에 있으면서도 아주 많은 사람들이 들고나고는 했고, 열심히 글을 쓰다가 잠수를 타는 사람들도 허다했다. 그런데 나는 그대로였다. 계속 읽고 썼고 읽고 썼다. 계속 그자리에 있었다. 친한사람들이 자취를 감추고 새로운 사람들이 둥지틀 틀어도 나는 계속 거기 있으면서 하던대로 했다. 나는 그야말로 성실했다. 성실함의 생생한 증거였다. 아, 나 성실하구나. 갑자기 머리를 탁- 치는것 같았다. 나..성실하네?

 

이건 분명 다른사람들이 잘 하지 못하는 일인것 같았다.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이 쓰다 질리고 혹은 지치고 귀찮아지고 옮기고 마음이 변하거나 하는데, 나는 계속 하던대로 했다. 다른 사람들은 이렇게 하지 못하는데, 나는 하고 있다면, 이거야말로 재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토록 듣기 싫어했던 성실하다는 말이, 어쩌면 재능일 수 있었고, 만약 그렇다면, 나는 재능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 재능이 비록 내가 원하는 쪽으로 나타난 건 아니지만, 타고 나는건 내가 어쩔 수 없는거니까, 내가 성실함을 타고났다면, 그것을 그저 내 재능으로 인정하고 계속 살려야 하는게 아닐까 싶어졌다. 그러니까 나는 얼마전까지만해도 성실하다는 말을 듣는것도 싫고, 성실하다고 스스로 인정하는 것도 끔찍했는데, 이제는 성실함을 무기로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거다. 타고난 문장력을 구사하는 대신, 타고난 이야기꾼이 되는 대신, 나는 타고난 성실함을 가진 게 아닐까. 만약 내게 내 재능으로 인해 좋은일이 생긴다면, 행운이 온다면, 그건 다른 무엇보다 성실함 때문일 것이다.

 

성실하다는 말을 듣기 싫어했던 건, 나는 천재들에 대한 동경을 갖고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내가 천재가 아니라는 게 너무 싫었나보다. 뭐 어쨌든 이제는 내가 성실하다는 걸 알고, 인정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건 마치 나에게 타고난 다른 재능이 없다는 것을 묵묵히 받아들이는 것 같지만, 뭐, 그건 어쩔 수 없는거니까.

 

예전에 재능이 없음을 탓하던 내게 한 알라디너가 댓글을 남겨줬었다. 성실함이야말로 재능이라고. 그 때는 그 말이 나에게 전혀 와닿지 않았는데, 이제는 그 말이 가끔 떠오른다.

생일 선물

금요일에는 타미 식구들이 와서 저녁에 타미 생일 파티를 했다. 제부는 오면서 내 생일 선물을 챙겨왔다. 내 생일은 아직 한참 남았는데 이게 뭔일, 하니 사연은 이랬다.

 

제부는 타미랑 놀면서 텔레비젼을 보고 있었다. 그렇게 채널을 돌리다가 홈쇼핑을 보게됐는데, 홈쇼핑에서는 네일아트 셋트를 판매하고 있었다. 메인 상품은 매니큐어 칠한 뒤 말리는 기계(이게 지칭하는 용어가 있는데 지금 기억이 안난다)인데, 그거의 셋트 상품으로 베이직과 탑 매니큐어, 손톱 다듬은 부수적인 것들, 매니큐어가 아니라 젤이라고 부르는 뭐 암튼 매니큐어의 종류 여러 색깔등이었다.  그 홈쇼핑을 보다가 제부는 내 여동생을 불렀고, 저 상품 괜찮지 않느냐고 물었단다. 처형이 좋아할 것 같지 않아? 처형 생각나는데?

 

여동생은 응 언니도 좋아할 것 같네, 라고 했단다. 내가 종종 매니큐어를 바르고 아주 가끔이지만 네일샵에 가서 네일을 받고 오기도 하니까.

 

그러자 제부는 얼마 안있으면 처형 생일이니 저걸 사뒀다가 처형 생일 선물로 주겠다고 했단다. 제부는 그간 항상 내게 생일선물로 현금을 송금했더랬다. 그 돈으로 방통대 등록금을 마감일에 낼 수 있기도 했고. 여튼 제부의 생각은 이랬단다. 처형은 자존심이 강해서 자신이 돈이 없어도 누가 돈 주는 걸 싫어하는 것 같다, 뭔가 오래 가고 기억에 남을 만한 선물을 주는 것을 더 좋아하는 것 같다, 그러니 나는 처형이 좋아할만한 저 상품을 구입해 가지고있다가 처형 생일에 주겠다, 했던 것. 그렇게 주문했지만 내 생일이 올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어떻게 기다리겠는가, 나라도 못기다린다) 이번에 올 때 가져와 내게 주었던거다.

 

사연을 들은 나는 여동생에게 말했다.

 

제부가 나를 잘못알고 있구나. 나는 돈이 없어도 돈 주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 아니야. 나는 돈이 많아도 돈 주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야.

 

라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여동생은 완전 빵터지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여튼 제부가 저렇게 내 생각을 했다는 것은 분명 기특하고 고마운 일이다. 다만 나의 귀차니즘은 저 선물을 그렇게까지 마음에 들어하지는 않는다. 가끔 매니큐어를 바르고(여름엔 발톱에 언제나 바르긴 하지만) 어쩌다 네일샵에 가긴 하지만, 그렇다고 저렇게 좋은 매니큐어와 부수적인 장비를 갖고 싶을만큼은 아니다. 뭐, 잘 쓰긴 하겠지만.

 

 

오늘은 여동생과 둘이 백화점엘 갔다. 실로 오랜만의 백화점 외출이었는데, 사야할 화장품이 있던 나는 화장품을 사고 계산을 하려는데 백화점카드를 가지고오지 않았다는 것을 계산 직전에야 알았다. 하아. 백화점 카드로 결제해야 다음달에 오프로할인 쿠폰도 나오고 디엠으로 다른 쿠폰도 발송되고 하는데 쓰읍. 여동생은 자신의 카드에 오프로할인 쿠폰이 있으니 자신의 카드로 결제하고 자신에게 송금하라고 했다. 그래서 알겠다고 하긴했는데, 언제나 현금은 부족하며 신용만 만땅인 내게는 그리 달가운 제안은 아니었다. 그래도 할인 안받고 사는 것보다는 낫겠다 싶어 결제를 했는데, 나중에 매장을 나서면서 여동생은 그렇다면 이걸 언니의 생일 선물로 하는게 어떻겠냐는 거다. 나는 단번에 좋다고 대답했다. 꼭 필요한 거라 사야했고, 내 현금이 나가지도 않으니 완전 좋다고. 아, 어쩐지 불쌍한데? 여튼 그래서 어쩌다 보니 아직 오지 않은 내 생일 선물을 미리 여동생 부부에게 다 받아버리고 말았다. 하하하하하. 그게 문제가 아니고, 요즘 나는 긴축재정으로(왜 매일 다이어트, 매일 긴축재정인걸까) 백화점에 통 오질 않고 있었는데, 오늘 쇼핑을 하다가 하아- 엄청 할인 많이하는 목걸이를 봤다. 아, 너무나 흔들려. 착용해보고는 좋다고 막 이러면서, 어차피 생일 선물 받는 날이라면, 이 목걸이는 내가 내 생일선물로? 하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카드를 안가져와서 다음으로 미뤘다. 그런데 눈앞에 아른아른. 아른아른. 가격도 저렴했는데 그냥 눈 딱 감고 살까. 그렇지만 지금 가지고 있는 목걸이도 안하고 있는데…흐음.

 

 

여튼 지금 시각은 새벽 01:51 이고, 나는 해야 할 일이 있으니 다시 일을 해야겠다.

대한민국 교육은 썩었다.

어제 열시 좀 넘어서부터 잤더니 오늘 새벽 다섯시가 안 된 시간에 눈이 떠졌다. 물론 다시 자려고 누웠다가 갑자기, 뜬금없이, 다니엘 헤니 생각이 났다. 어떤 광고에선가 수트를 멋지게 입고 걸어서 앞으로 나오면서 리브 브릴리언트, 하던 그 광고. 아, 멋지다. 훈훈해. 다니엘 헤니랑 사귀고 싶다, 이런 생각을 하다가 그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아이를 낳으면 예쁠까? 오히려 아빠보다 못생긴 아기가 나올 수도 있겠지. 데이트 하면 영어로 대화해야 하나? 기본적인 한국어는 알겠지. 이런 쓰잘데기 없는 생각을 하다가, 그런데 섹스를 하게 되면 콘돔을 끼라고 말해야 하는데, 나는 미혼모가 되고 싶진 않으니까, 그러면 콘돔 끼라고도 영어로 말해야겠지? 라고 생각한 순간, 콘돔을 끼라는 말을 영작해보기 시작했다.

 

you have to wear condom.

 

어..이건 아닌데. wear 는 적당하지 않은것 같은데. take 를 써야 되는거 아닌가? take를 써서 어떻게 만들지?

 

you have to take condom.

 

아니 have to 와 take 가 둘 다 쓰이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걍 take 를 앞으로 빼서 명령어로 해도 될 것 같은데.

 

Take condom.

 

그런데 take 와 condom 사이에 뭔가 필요하지 않나? 뭘 넣어줘야 되는거 아닌가? 이러다가 씨양 대한민국 교육이 엉망이란 생각이 들었다. 중고등학교와 대학교까지 총 십 년을 영어를 배웠는데 국제 연애를 하기 위한 기초적 문장 조차 만들지 못하게 만들다니. 콘돔을 착용하란 말을 영작하지 못해서야 어디 원 국제연애를 하겠는가 말이다. 글로벌 시대에 콘돔을 껴라, 정도는 술술 나올 수 있어야 되는게 아닌가. 뭐, 막상 상황이 닥치면 그냥 condom 이라고 말만 해도 상대는 척 하고 알아들을 테지만, 그래도 완벽한 문장을 만들어보고 싶은데. 대한민국 교육이 썩었어… 대한민국 교육, 이대로는 안된다. 진짜 안돼..

 

 

YouTube에서 piano baby 2 보기

나이 실감

– 며칠전에 집에 돌아가서 남동생에게 말했다.

 

야, 나는 아침에 향수 뿌리고 나가서 향기로운데 왜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쉰 내가 나지? 너도 그래?

 

그러자 남동생은 대답했다.

 

난 아침부터 쉰 내 나.

 

그리고 우리 둘은 깔깔대고 웃었다. 뭐가 좋다고… ㅎㅎㅎㅎㅎ

 

 

 

– 어제는 s 와 데이트를 하다가 택시를 탔는데, 택시 안에서 기사님과 어떻게 하다보니 술과 고기 얘기를 하게 됐다. 그러다 s 가 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기사님이 추측할 수 있게 되었는데, 이러셨다.

 

남편분은 술을 별로 안좋아하시나봐요?

 

헐. 나는 그가 내 남편이 아니라고 입장 설명을 하진 않았다. 딱히 뭐 그래야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고. 그런데 나는 아, 내가 나이가 정말 많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내가 십대나 이십대의 여자였다면, 그러니까 그렇게 보였다면, 기사님은 남편이라고 칭하는 대신 ‘남자친구’나 ‘애인’ 이라고 칭하지 않았을까? 어디로 봐도 내가 나이 지긋해 보이기 때문에 아무런 거리낌 없이 대뜸 ‘남편’ 이란 단어가 입 밖으로 나온 게 아닐까. 남편이라니, 너무나 낯설고 생소한 단어여서 잠깐 주춤 했다.

 

아, 나 정말 늙었는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