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에 MBTI 검사를 받았고, 나는 ESFP 라는 진단을 받았다. ESFP를 특징하는 단어들, 이를테면 사교성이라든가 쾌활함이라든가 하는 것들이 나를 무척 잘 설명하는, 내게 맞는 단어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그 단어들이 내게 잘 맞는다는 게 싫었다. 나도I 님처럼 ‘체계적’ 이런거 갖고 싶었는데.. -_-
어쨌든 나를 설명하는 단어들을 듣고 있노라니 내가 너무나 싫어하는 S 가 떠올랐다. 그사람의 오지랖 넓음을 나는 그토록이나 끔찍하게 여기는데, 내 성격이 그 사람과 닮아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거다. 일전에 친구로부터 ‘너 S 의 오지랖을 닮았어’ 라는 말을 들었던터라 뭔가 신경이 곤두 서 있는 느낌이랄까. 정말 닮은걸까, 내가 그토록 그 사람을 싫어했던 까닭은 내가 닮아서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너무 싫어해서 싫은 점을 닮아 버렸나..하는 생각까지. 여튼 그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고 나를 숨막히게 하고 있었는데, 이번 진단을 받으면서 그 생각이 아니나다를까 떠올라, 모임의 사람들에게 나 S를 닮은걸까, 하고 걱정을 했더니 그들 모두가 무슨 소리하냐며 아니라고 한 목소리로 말해주었다. S가 가진건 정의롭다고 본인이 스스로를 판단하는 데서 오는 오지랖이고, 너는 ‘사람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사람에 대한 관심이 많은 거라고.
사람에 대한 관심이 있다는 게 오지랖의 다른 표현이 아닐까 싶어서 처음 듣고서도 조금 시큰둥했다. 그게 그거 아닌가..하고. 그런데 생각을 계속 하고 또 거듭 생각하다보니, 아, 그건 오지랖과는 다르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관심과 오지랖은 다르다는 생각을, 이제는 나도 한다.
각자의 성향에 대한 여러가지 이야기들이 오고가는 와중에, 이 검사를 해준 N 은 내게 자신과의 차이를 말해주었다. 자신은 모임 사람들이 즐거운 이유가 N 자신 때문이기를 바라는데, 나는 모임 사람들이 즐거운 이유가 그들 각자여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그 말이야말로 나를 가장 적확하게 표현하는 거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가 그들을 재미있게 해서 그들이 즐거운 게 아니라, 그들 자신이 스스로 어떤 때 즐거운 지를 찾고, 알고, 그렇게 살기를 바라는 사람이니까. 늘 그런 얘기를 하니까.
며칠전에도 회사 동료 K 대리가 술을 마시자 청해왔다. 일전에 술을 마시면서 내가 해주었던 얘기들이 자꾸 생각이 난다고, 혼자 있을 때 자꾸 떠올라서 얘기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요즘 애인 때문에 힘든 B 를 데려올테니 그 때 들려줬던 얘기들을 다시 들려달라고 했다. 그들과 대화했던 생각도 나면서 N의 저 분석은 정확했다고 다시 생각했다.
오늘 새벽엔 꿈을 꿨다. 사실 프라이빗해서 적지 않으려다가 잊지 않기 위해서 적어두어야 겠다고 마음을 바꿨다.
꿈에 친구1과 애인(이 꿈에는 있었다)과 함께 미국엘 갔다. 일정은 5박이라 빠듯해서 뉴욕에서 하룻밤을 자기로 했는데, 그 과정에서 남자1을 만나게 됐다. 남자 1은 평소에 내가 흠모하던 사람이었는데, 그는 다른 곳을 여행하다 뉴욕엘 왔고 그렇게 우연히 만나게 된거였다. 그에게는 중국인 애인이 있었는데, 어쩐 일인지 나는 그들이 한 침대 위에 누워서 잠든 장면을, 남자1이 중국인 미녀 애인에게 약간 쌀쌀맞게 대하는 모습들을 다 볼 수 있었다. 나는 꿈속에서 그를 무척이나 원했는데, 그에겐 중국인 애인이 있어서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그러다 뉴욕에서 맞닥뜨린건데, 무슨 일인지 일본 사무라이들인지 뭔지 여튼 칼을 든 무사들이 그를 죽이려고 모여든거다. 네 명의 남자들이 그에게 긴 칼을 휘두르고, 어쩐일인지 그의 부모님들도 그 옆에 있다가 저걸 어째 저걸 어째 발을 동동 구르는데, 오, 남자1은 내 생각과 다르게 아주 민첩하게 그 칼을 잘도 피하는거다. 매트릭스의 네오처럼 허리를 완전 유연하게 구부려서 그 칼들을 모두 피하는데, 그가 피하는 건 한계가 있을터라, 에라 내가 막아주자 하고 생각했다. 저들이 남자1을 왜 죽이려고 하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들과 원한이 없고 그들 역시 민간인을 죽이지는 않을 것이다, 라는 생각으로 두 눈 질끈 감고 쓰러진 남자1의 앞에 두 팔을 벌려 섰다. 그를 향해 칼을 휘두르던 무사1은 차마 더 다가오지 못하고 멈췄고, 그걸 본 주변 사람들이 남자1 주변에 둥그렇게 원을 만들고 섰다. 그러자 무사들은 더이상 접근하지 못한 채로 사라지고 말았고, 남자1은 덕분에 무사할 수 있었다.
나는 내가 그를 구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는 데에 뿌듯했고, 가슴속에 나에 대한 자랑스러움이 막 불끈불끈했다. 남자1은 나 때문에 살았다고 생각해서인지 나에 대해 뭔가 새록새록 열정이 생긴 듯했고. 그래서 자연스레 우리는 둘이 나란히 손잡고 암수 서로 정다웁게 찰싹 달라붙어서 뉴욕의 거리를 걸었다. 그가 돈을 찾아야 한다고 했고, 나는 뉴욕에 와 본 적이 있어서 돈 뽑는 곳을 알려줄 수 있다며 어느 마트 안의 현금지급기 앞으로 그를 데려갔다. 그러다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내 친구1과 애인이 보였다. 그들은 계속 나를 따라 다니고 있었고, 나는 내가 그들과 함께 왔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던 거다. 남자1에 취해서..
아무 말도 못하고 조용히 나를 바라보기만 하는 애인이 불편했다. 미안한 감정이 생기는 것도 싫었다. 그러나 애인에 대한 미안한 감정보다 남자1에 대한 사랑이 훨씬 커서 내가 뭘 더 어떻게 할 수가 없었고, 어차피 뉴욕에서 1박 하기로 한 거, 호텔의 방 두 개를 잡아 나는 남자1과 들어갈거라고 생각했다. 애인은 친구1과 자라고 해야지, 하고.
그렇게 걷다가 호텔이 나왔고, 아우 저기 있는 애인 불편해, 하는데 친구1이 호텔에 들어갔다 와서는 숙소 예약을 끝냈다고 했다. 오 수고했다며 들어가려고 하면서 방은 두 개 잡았지? 하는데 친구1이 하나만 잡았다는 거다. 어? 늬들은 안묵어? 라고 물으니, 남자1만 묵을 방이라는 거다. 헐. 이게 뭐야. 나는? 그랬더니 친구1은 자기들과 함께 계속 여행을 가야 한다는 거다. 무슨소리야, 우리 오늘 뉴욕에서 1박 하기로 했잖아, 하니 계획을 바꿨다고, 우린 계속 떠나자는 거다. 친구1은 내가 애인을 두고 남자1에 정신이 팔려 있는게 몹시 짜증났던거다. 난 이 모든게 애인 때문인 것 같아 너무 짜증이났다. 남자1과 묵을 수 있었는데!! 그런데 더 속상한 건 남자1이 아쉬워하지도 않고 방 잡아 줘서 고맙다고 잘들 가라고 말하는거다. 쌍놈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여튼 그런 와중에 갑자기 개 한마리와 여동생이 등장했고, 나는 여동생한테 애인을 애인이라 소개시키면서 짜증이 났다. 남자1을 소개해야 되는데 아 짜증나. 왜 저인간은 저렇게 묵묵히 조용히 따라다니기만 하는거야…
암튼 이러다 깼다. 짜증낸 느낌보다 행복한 느낌이 더 기억에 많이 남았다. 남자1이 중국인 애인에게 쌀쌀맞고 이기적이게 굴던 모습, 우리 둘이 암수 서로 정다웁게 걸었던 모습 같은 것들. 오늘 밤에는 2편 꾸고 싶다. 친구1과 애인에게 이쯤에서 따로 여행하자고 말하고 남자1의 방문을 노크하는 꿈. 아자.
최신 댓글